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거론되는 영화는 희안하게도 이제는 고전이 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 작인 '라쇼몽'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항상 많은 영화인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작품이 이 작품이고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감독들이 많다는 겁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사건에 휘말립니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는 다르고 그 기억 또한 다릅니다. 그것이 로맨틱 코미디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요?
'가문의 영광' 시리즈, '인형사' 등등의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정용기 감독...
예상치 못하게 이 영화를 보러 오라고 초대를 받았네요.
여기 다섯명의 남녀도 저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에 휘말렸습니다.
영화 '커플즈' 입니다.
커피 빼고 건강차를 파는 카페 주인 유석...
큰맘먹고 은행융자에 빛얻어 어렵게 내집을 장만하고 사랑하는 여인인 나리를 위해 이 집을 선사하려고 했지만 나리는 떠난다는 문자하나 남기고 그렇게 사라졌지요.
은행가던길에 택시기사와 접촉사고에 은행강도 만나는 등의 운이 없는 날이 되나 싶었지만 여경 애연을 만나면서 그들의 상황은 극적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애경은 애인과 결별하고 비싼 반지인 줄 알았던 것이 문방구 싸구려 반지만도 못하다는 것에 절망하게 됩니다. 은행에서 처음 만나고 음식점에서 외상으로 만난 이상한 인연이지만 애경 역시 유석에게 마음이 없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작은 사고로 인해 얼떨결에 유석의 집으로 향하게 된 애경은 전 애인인 나리를 만나게 됩니다. 나리는 짐을 챙기러 왔다지만 사실 그녀의 짐가방에는 돈이 수북히 가득합니다.
그 사실을 안 것은 그녀 뿐만이 아닙니다. 유석의 친구이자 홍신소를 복남은 유석의 부탁으로 사라진 애인 나리 찾으러 갔다가 돈가방을 훔친 나리도 발견하고 나리의 새로운 애인이 조폭출신인 병찬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병찬이 조폭임을 알면서도 돈가방을 훔친 나리는 복남에게 거꾸로 부탁을 하여 돈가방을 원위치하려는 척하지만 문제는 그 유석의 집에 있는 나리의 짐가방!
견물생심이라고 그 짐가방 속 돈을 발견한 애연은 밀린 방세를 내기 위해 해서는 안될 짓을 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 다섯남녀는 서로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돈의 행방은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유석과 애경은 정말 은행에서 처음 만난게 맞을까요?
사랑은 줄줄이 소시지, 줄줄이 사탕처럼 그들에게 다가옵니다.
앞에도 말씀드렸지만 '라쇼몽'의 스타일을 지닌 영화는 국내나 외국영화 통틀어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는 스타일입니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오마쥬처럼 만드는 이들도 있지만 어설픈 패러디나 인용은 오히려 욕을 먹기에 충분하겠지요.
이 영화는 다섯 남녀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그 속에는 일반인 세 커플의 이야기 속에 이들 다섯 남녀의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이 일반인 세 커플역시 이들 다섯 남녀의 사건과 알게 모르게 얽혀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져 있고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유석의 급정거로 버스 속에서 커플이 탄생했고, 병찬의 포스에 기가 죽어 딸기 푸딩이 기도에 막힌 남자, 그리고 그 푸딩에 미끄러진 사람들 등등 세 커플의 아무 상관없는 인터뷰 속에 이들 다섯 남녀가 얽히고 섥혔다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주된 내용입니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만드려면 여려 장치를 숨겨야 하고 그 장치들이 허술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커플즈'는 의외의 탄탄함을 가지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정용기 감독의 작품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의 작품 중 하나였던 '원스 어 폰 타임'은 의외의 재기발랄함과 역사적 상황을 허구와 적절히 버무렸다는 점에서 재미있게 본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가문의 영광 1'을 제외한 나머지 시리즈를 그가 맡으면서 많이 이야기된 것이 조폭을 미화시켰다는 점입니다.
어떠면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이 공형진 씨가 맡은 병찬의 모습일껍니다. 하지만 의외로 순박한 건달을 등장함으로써 이야기는 자극적인 부분을 교묘히 피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제는 로맨틱 코미디의 제왕이 된 김주혁 씨는 버라이어티나 영화 그 어느 쪽에서도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시영 씨는 밉지만 한 편으로는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꽃뱀 나리 역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오정세 씨는 개봉을 앞둔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포함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감초 연기로 익숙한 얼굴이지만 역시나 오정세 씨는 개그적인 캐릭터가 더 어울리는 분이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의외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애연 역의 이윤지 씨 입니다. '산장미팅-장미의 전쟁'의 미팅녀로 저에게는 기억이 남는 그녀지만 다양한 드라마를 통해 연기의 경험을 쌓았고 '드림하이'는 그것에 절정을 이루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청순한 여경으로 등장하여 유석과 러브라인을 이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물론 다섯이지만 제가 눈여겨 본 인물은 택시기사로 등장한 조한철 씨 입니다. '할 수 있는자가 구하라', '모비딕', '김종욱 찾기'에서 활약한 배우인데요.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정용기 감독은 트위터(@jeongfilm)를 통해 연기를 잘하는 앞으로 기대되는 배우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코미디 영화에서 메시지를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런 오락적인 영화는 관객이 유치하다고 느껴지지 않을만큼 얼마나 탄탄하게 이야기를 구성했느냐일 것입니다.
'커플즈'는 약 하룻동안 벌어진 돈과 관련된 헤프닝입니다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돈가방(혹은 돈다발)의 행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연한 만남이 사랑을 꽃피우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커플즈'는 그냥 부담없이 보실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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