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청원]인도영화의 반란... 안락사에 대해 되묻다!

송씨네 2011. 10. 27. 04:45

 

 

 

 

랍권 영화들의 개봉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쪽의 영화들은 제 3세계 국가라고 해서 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인도, 이스라엘, 이란 등등의 종교 문제나 남녀평등 관련 문제로 민감한 이들 국가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여전히 영화제작에 있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전에도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인도영화에는 음악이 없으면 어색하게 느껴진다고 말이죠. 그리고 음악 속에 주인공들은 항상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고요.

하지만 (물론 인도감독은 아니지만) '슬럼독 밀레니어'와 같은 영화에서는 뮤지컬 적인 상황이 사라지고 있고 최근에 이런 방식을 시도하는 인도 감독들도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이죠.

우리에게는 '블랙'이란 작품으로 알려진 감독인데요, 그가 신작을 내놓았습니다.

오늘 할 이야기는 바로 이야기할 영화는 '청원'이라는 작품입니다.

 

 

한 허름한 저택... 한 남자가 마이크에 가까이 앉아 있습니다.

그는 마이크를 들 수 없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고요.

하지만 그는 DJ입니다. 그의 이름은 이튼...

14 년 전... 그는 잘나가던 마술사였습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상태이고 그는 얼굴에 붙은 파리며,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세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14 년을 그렇게 버텼습니다.

그의 곁을 간호해준 소피아가 있었고 변호사 친구인 데비아니도 있으며 주치의인 나야크 박사도 그의 편이었지요.

하지만 그의 삶에도 어느 덧 한계가 찾아옵니다.

그는 자신을 죽여달라고 인도 법원에 청원을 하게 됩니다. 안락사 시켜달라는 것이지요.

그러던 와중 한 남자가 이튼에게 마술을 배우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등장합니다.

오마르라는 정체불명의 사내... 사고뭉치이지만 점점 이튼에 있어 훌륭한 제자로 성장합니다.

자신의 안락사에 모두 반대하는 입장을 갖자 이튼은 자신의 라디오 방송에 자신의 안락사 문제를 공개 투표하기로 맘먹습니다. 청취자들의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지요.

모두가 반대... 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나 봅니다.

소피아는 그런 이튼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힘든 삶을 같이 경험하면서 그녀의 생각도 조금씩 변화를 보여줍니다.

법원의 판결... 과연 이튼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안락사라는 문제는 전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많이 이야기되는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존엄나 안락사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이야기되고 있으며 2009년에는 한 대학병원에서 이런 문제가 이슈가 되기도 했지요.

외국에도 이런 이야기는 많이 찬반양론이 발생되고 있으며 이는 사람 뿐만 아니라 발언의 기회조차 받을 수 없는 동물들에게도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상적인 점은 이 영화의 제작국가가 인도라는데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가 많은 국가이고 생명존중에 대해서도 엄격한 입장을 밝히는 국가라는 점에서 이 문제를 영화를 통해 들고 나왔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신마비, 파킨스병, 식물인간 등등 사람의 몸이 정상적으로 활동하지 못할 때 내리는 최후의 수단이 바로 이 안락사라는 것인데 식물인간의 경우 가족이 요청하기도 하지만 말을 할 수 있는 환자 자신이 요청할 수 있는 경우도 있음을 생각할 때 영화속 이튼의 고통은 어느 정도일까 궁금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이튼은 그 고통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기회를 주지요. 법원이 아닌 이튼의 집에서 열린 안락사에 관한 법정공방 장면에서 그는 검사에게 뒤주같이 생긴 나무상자에 1 분을 갖히게 놔둡니다. 자신의 고통이 이 정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지요. 1 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숨이 막힐 정도의 고통이 오는 것이지요. 이튼의 고통도 그에 못지 않다는 것입니다.

 

재판결과는 역시 예상대로 그의 고통은 이해하지만 그의 청원을 기각하기에 이릅니다.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점에서는 그 판결을 나쁘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죽을 권리조차 법의 심판에 제한을 당한다는 것에 일부는 반발하게 됩니다. 그 어느 쪽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지요.

 

 

 

 

 

이 영화는 기존 인도영화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앞에 말씀드렸다시피 뮤지컬적인 장면이 없습니다.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의 전작 '블랙'에서도 그런 연출을 최대한 줄였지요. 이 영화는 내용도 내용인 만큼 뮤지컬보다는 음악에 더 많이 신경을 쓴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 영화에도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도 인도음악이 아닌 팝을 말이지요. 바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면은 두 번 정도 등장하는데요. 이튼의 어머니가 이튼이 어릴적 공연장에서 부르던 장면에서, 그리고 또 한 번은 그의 어머니가 임종을 맞이하고 장례식장에서 이튼이 어머니를 대신해 부르는 장면에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로빈 윌리암스가 등장한 영화 '굿모닝 베트남'에서도 이 노래는 상당히 현실과 다르게 이용이 되었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상황에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라고 노래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어쩌면 슬픔을 극대화시킨 장면이자 이튼의 상황에 대한 일종의 반어법처럼 쓰인 음악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또 하나, 이 영화는 판타지적인 장면은 많지 않지만 주인공의 소망을 나타내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판타지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비슷한 영화가 참 많았죠.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이 등장하고, 역시 우리나라 영화인 박진표 감독의 '내 사랑 내 곁에'는 모기를 자신의 손으로 잡아내려는 파킨스병 환자의 소망을 판타지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영화 '청원'에서도 이튼이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잠시나마 휠체어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관객들은 이 장면이 그가 죽음을 원하고 있지만 사실은 정말 일반인처럼 살고픈 소망이 전혀 없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그런 판타지적인 장면이 사용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튼 역으로 등장한 리틱 로샨은 인도에서 사랑받는 배우로 멋진 몸을 지니고 있는 배우로도 평가 받고 있지만 영화를 위해 일부러 근육을 키우지 않았음은 물론이요, 마술을 배우고 직접 전신마비 환자들과 시간을 많이 갖으며 캐릭터 연구에 힘을 쓴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피아 역의 아이쉬와라야 라이의 경우 제 입으로 설명하는 것이 웃길 정도로 인도에서 사랑받고 있는 대표적인 여배우입니다. 타임지 표지에 인도여성 중 최초, 칸 영화제 인도인으로는 최초 등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지만 미모와 더불어 연기력 역시 인정받고 있는 배우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이튼에게 헌신하는 여성으로 등장하며 아름다운 미모와 육감적인 몸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수입은 이번에도 at9이라는 곳으로 '세 얼간이' 수입에 참여한 정상진 대표가 또 한번 인도영화의 붐을 일으키려는 노력을 한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아울러 멀티플렉스인 씨너스가 롯데와 CJ(CGV)와 마찬가지로 극장과 배급사업을 동시에 뛰어드는 작품으로 첫사례는 아니지만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의외로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왜 죽음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슬퍼야 할까라는 부분에 생각을 뒤집은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 영화 '써니' 역시 경건해야 할 장례식장에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추모와 축제를 벌입니다만 이 영화 '청원'의 결말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물론 죽음은 경건한 것입니다만 어쩌면 행복하게 죽은 것이야말로 모두가 즐거운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여전히 존엄사나 안락사에 대한 문제는 심각하게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고 그 결론은 확정된 결과가 아닌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