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사물의 비밀]여성의 관점에서, 무생물의 관점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다!

송씨네 2011. 11. 24. 02:07

 

 

 

과거 영화를 보고나서 네티즌들의 평가는 좋다, 나쁘다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깊이 없는 영화평도 보기 힘들었고요. 하지만 최근들어서 변화된 점은 이른바 알바 조작에 관객들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영화를 보고나서의 판단이 많이 주관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이죠.

그런점에는 SNS의 영향력도 크지만 사실 그 이전에도 20자 평, 40자 평이라는 것이 있긴했죠. 하지만 내용을 담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에 SNS로 영화평을 길게 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혁신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서론이 좀 길었습니다. 보통 벗는 영화들은 평가가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이런 영화들에 대해 홍보를 함에 있어서 조심스럽게 홍보하는 경향도 있고요. 그것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합니다. 근데 이 영화 관객들의 평가가 좋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상영관이 줄어든다고 함니다.

벗었지만 노골적이지 않는 영화, 40 대 여성의 일과 사랑을 다른 관점에서 본 묘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사물의 비밀' 입니다.

 

 

#복사기의 이야기

나는 복사기입니다. 대학교 교수인 혜정의 방에 있는 나는 복사기입니다.

나는 그녀가 하는 일을 매일 보고 있습니다. 물론 나보다도 마우스, 모니터, 컴퓨터 본체 등의 녀석들이 그녀의 모습을 잘 알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 교수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너무나 잘 압니다.

한 학생이 찾아옵니다. 혼외정사에 대한 논문을 준비중인 혜정은 보조를 구하는 광고를 냈고 우상이라는 한 아이가 찾아옵니다. 우상의 디카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그는 사과도 잘 깎고 오토바이도 즐겨타는 아이라고 하더군요.

횟집 여인의 연상남과의 황홀한 이야기를 듣고 두 사람은 의문을 갖게 됩니다. 혜정은 우상에게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남자의 사랑이 가능한가의 질문에 가능할 것이라고 대답하지만 자신에게 대입된다면이라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죠.

나는 그 녀석 우상이 내 몸에 손을 갖다댈 때 부터 느꼈습니다.

그 애는 어딘가 모르게 차가운 아이라고 말이지요. 

 

 

#디지털 카메라의 이야기

저를 부르는 이름은 참 많아요. 디카라고 줄여서도 부르고 디지털 카메라, 혹은 하이브리드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앞에 장황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요.

저는 전문가들이 쓰는 그런 카메라는 아니랍니다. 흔히 말해 똑딱이죠.

저는 우상의 디지털 카메라입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부모님이 저를 선물해주던 어느 날로 기억합니다. 문방구를 운영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사는 친구지만 그의 부모님들의 상황은 좋지 않았죠.

우상이 보는 앞에서 이혼선언을 한 부모님은 둘 중 누구에게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의외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내놓으라는 이야기를 했고 두 사람은 그에게 땅문서만 남기고 떠났지요.

그는 3일을 그렇게 잠들었고 모든게 원상복귀 되길 기다렸지만 아무것도 돌아온 건 없었습니다.

차가운 밤공기 밴치에서 지금의 형(매니저)을 만났고 그는 낮에는 대학생이 되고 남에는 호스트바에 인기남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스트바에서 혜정을 만났고 두 사람의 관계는 냉각기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우상 역시 은근히 혜정에게 끌리고 있었음을 말이죠. 

 

 

 

 

 

대부분의 영화들은 그렇듯 누구의 관찰자 시점인지 이야기하지 않는 영화들이 대부분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영화들이 관객들의 입장에서 보는 영화이고 사건이 벌어지면 그 사건에 대한 목격자인 사람들이 바로 이 영화를 보게되는 관객들이죠.

하지만 소설이자 한국영화의 고전으로 알려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나(옥희)라는 작가시점에서 이야기가 이야기되는 특이한 영화였고 그런 영화는 (가끔 나오긴 하지만) 당분간은 자주는 나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더 노골적입니다. 1 인칭도 아닌, 3 인칭도 아닌 다른 시점이라는 것이죠. 물론 이 영화는 그들, 그녀를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3 인칭에서 봐야겠지만 근데 문제는 그게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죠. 살아있지 않은 복사기와 디지털 카메라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러니 더 어처구니가 없죠.

하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그 방식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무생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느낌이 달랐던 것이죠. 물론 그동안의 영화들 중에는 동물의 입장에서 혹은 갖난 아기의 입장에서 바라본 영화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 있는 생물이었지요. 심지어 갓난 아기조차 인간이니깐요.

더구나 이 작품에서는 혜정의 이야기에서는 남자 나레이션을, 우상 이야기에서는 여자 나레이션을 집어넣어 서로 짝패의 개념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었지요. (이렇게 만든데 큰 역할을 했던 이필모 씨와 심이영 씨의 나레이션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죠.)

 

또 하나... 이 영화는 여성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입니다.

요즘 여성감독 기근 현상에 많이 시달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이정향, 변영주, 황수아, 방은진, 정재은 감독 등등... 여성 감독은 많지만 그 활동빈도가 예전 같지가 않다는 것이죠.

더구나 40대 여성의 사랑과 일, 그리고 섹스에 대한 부분을 적나라하게 다루는 여성감독들도 많지 않죠. 간혹 남성 감독들이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는 있지만 접근성에서 떨어지는 면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 시나리오 작가가 여성이라면 잘 만들겠지만 감독도, 시나리오 작가도 남자인데 여자 이야기를 만들겠다면 조금은 말도 안되는 소리겠죠.

그런점에서 복사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혜정의 이야기는 40대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이 됩니다. 배운 사람이지만 사랑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고 아직 진실한 사랑을 찾지 못한 여성으로 등장하였는데 그 부분이 많은 여성관객들에게 공감을 받은 것이지요. 이 영화가 단순히 벗는 영화였다면 분명 공감을 받지는 못했을 껍니다. 

 

 

 

 

장서희 씨는 엘리트 여성이지만 사랑에 목마른 여교수 혜정으로 등장하여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수 백지영 씨의 남자로 익숙한 정석원 씨는 꿈은 있지만 자신의 삶에서 방황하고 있는 우상의 모습으로 열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의외의 배우를 발견했습니다. 개그맨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박희진 씨 였지요. 개그맨이라 불리우거나 코미디언이라고 불리우는 이들은 애드립에는 강한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것은 코미디나 생방송 프로그램에서는 될지 몰라도 영화나 드라마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죠. 코미디언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들은 영화에서도 그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오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임하룡 씨를 시작으로 문세윤 씨 등의 개그맨들은 자신들의 이미지를 버리고 또다른 모습으로 연기하고 있습니다.

 

최근 '플레이'에서는 송영길 씨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이 영화에서는 박희진 씨가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안성댁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녀는 혜정의 친한친구이자 호스트바에 파워 있는 단골손님으로 등장하여 우상을 비롯한 호스트바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인물로 등장하지요.

코미디언이나 개그맨들의 기존의 자신의 캐릭터를 버리고 다시 새로운 캐릭터로 도전하는 모습은 오히려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봅니다. 이는 개그맨에서 배우로 거듭나는 정성화 씨나 윤기원 씨의 좋은 예가 있기 때문에 본받을만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 영화가 아쉬운면도 있습니다. 나레이션이 많다는 것은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인데 무생물인 복사기와 디지털 카메라의 목소리를 담기에도 바쁜데 이 영화는 혜정과 우상의 목소리까지 담으려고 합니다.

또한 복사기와 디지털 카메라는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잡아내지만 우상과 늘 붙어있는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복사기는 혜정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음에도 그들의 일상을 마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부분은 약간 옥의 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혜정의 경우는 복사기보다는 핸드백이나 립스틱 등의 도구가 어쩌면 그 역할을 할 수 있겠지요. 아... 휴대폰도 괜찮겠네요.)

어쩌면 이 영화에서 나레이션은 영화를 보는데 큰 도움을 주지만 그 부분이 너무 많다보니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거슬리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는 것이죠.

 

 

 

사실 이 영화를 볼 계획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보도자료 하나가 제 마음을 움직였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죠.

바로 이 영화, 이영미 감독의 호소문이 담긴 글이었습니다.

교차상영(일명 퐁당퐁당 상영)으로 인해 영화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데 이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도 KBS의 오락 PD로 알려진 김석윤 감독(지금은 종편인 JTBC로 옮겨가셨죠!)의 '올드미스 다이어리-극장판'이 반응이 좋음에도 퐁당퐁당 상영이 문제가 되면서 그 부분을 비판한 적이 있으니깐요. 이 부분은 해가 지나도 전혀 바뀌지 않는 부분이 되고 있습니다.

멀티플렉스가 많아짐에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FTA 비준안이 통과되면 이런 한국의 독립영화는 홀로서기가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죠.

이 영화 한 편으로 한국 독립영화의 미래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같은 문제점이 되풀이 된다는 것은 그 악순환이 이제 다시 시작된다는 일종의 경고장처럼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