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레드마리아]女子, 여자, babae(바바에)... 여자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요?

송씨네 2012. 5. 28. 20:48

 

 

 

리뷰의 제목을 결정할 때 고민하는 것은 눈에 띄면서 자극적이지 않게 올려야 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많은 제목을 생각했습니만 '여자는 위대하다'라는 낯간지러운 제목은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죠. 여성, 여자, 어머니 만큼 위대한 존재도 드무니깐요.

이번에 소개할 다큐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필리핀과 한국과 일본을 돌며 감독이 경험한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작품을 보면서 느낀 것은 남자만큼이나 여성들도 고생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몰랐다는 것이죠.

남성들도 공감하게 되고 여성들은 더더욱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여자이야기... 다큐 <레드마리아>입니다.

 

 

 

줄거리를 압축하기 힘든 다큐입니다. 워낙 다양한 각계 각층의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등장하고 한국, 일본, 필리핀의 다양한 국가의 여성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줄거리를 압축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번째 화면의 주인공은 우리나라입니다. 지금은 파업을 풀고 평화를 되찾은 기륭전자 노조원 중 한 명인 윤종희 씨의 이야기를 비추고 있습니다. 기륭전자는 200 여명을 정리해고 했고 6년이 넘게 이 중 8명의 노동자가 싸우고 있던 상황이었지요. 윤종희 씨는 그 중 한 명이며 옥상에서 텐트를 치며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시위는 더 과격해졌지만 그 과격해진 것은 노조 때문이 아닌 사측과 경찰의 무리한 진압이 문제였지요.

일본 오사카로 넘어가면 또 한 명의 노동자가 회사와 싸우고 있습니다. 사토 씨는 18년 간 파견직으로 일하다가 해고 되었습니다. 자격증을 따라는 회사의 방침에 자격증도 땄지만 그것도 무용지물이었지요. 그가 싸우는 회사는 거대 전자회사인 파라소닉... 어쩌면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이 될지도 모르는 외로운 싸움이지만 그녀는 그것에 맞써 싸우고 있습니다.

철길이 놓여진 판자촌에서 살고 있는 필리핀의 그레이스 씨에게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습니다. 이 곳에서 빨레도 하고 자신의 몸도 씻고 설겆이 등의 일을 하는 곳이지만 부정부패가 가득한 나라이지만 빈민층에 대한 대책도 없는 나라이기도 하죠. 낙태와 피임을 금지 시키니 출산율은 늘어나는데 이에 대한 대책도 없습니다.

용기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국의 희영 씨는 우리가 그렇게 손가락질을 하던 윤락녀입니다. 성매매 금지법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도 잃고 일터도 사라졌습니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듯 그녀들에게 이것이 전부인 삶입니다. 그들은 음지에만 있지만 않습니다. 나름 노동자 연대를 가지고 있고 자신들의 권리도 챙기고 있으니깐요.

 

필리핀의 부클로드는 성매매 여성들의 쉼터입니다. 그들도 원치 않지만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 말고는 없는 상황이죠.

클롯 역시 성매매 여성으로 활동했었습니다. 열 여섯에 아이를 낳고 살아가지만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부를 게을리하는 것도 잊지 않고 아이들은 나름 꿈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필리핀에는 어두운 모습만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나라로 시집와서 살고 있는 제나린 씨는 자신의 고향 필리핀으로 한국인 남편과 같이 금의환향하여 왔습니다.

치매에 걸린 노모는 겨우겨우 그녀를 알아보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과 비타민을 나눠주며 그들은 작은 행복을 얻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농사짓는 농부의 아내가 되어 돌아와 있습니다. 화상통화를 통해 그리운 가족과 자주 만나지만 그래도 고민이 많긴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시즈오카의 조순자 씨는 지적장애인을 돕는 여성입니다. 복지사 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제일동포인 그녀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하지만 일하면서 생기는 통증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작업량도 많고 나이도 많으니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영화에서 많은 인터뷰를 했던 인물은 필리핀의 리타 할머니는 말라야 롤라스라는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자면 나눔의 집...

그렇습니다. 그녀는 일본군에게 성 노리개로 희생당한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라야 롤라스의 모습은 평온해 보입니다. 어르신들은 포커 게임을 하며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고, 어딘가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희생당한 레드하우스는 아직도 남아 있어 그들의 고통이 여전히 전해지는 듯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타국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어떠할까요? 일본 가와사기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주장하는 모니카 씨는 남미 노동자로써, 혼혈인으로 살아가는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고통이 되풀이 되지 않길 바라며 남편과 같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홀로 살지만 당당하게 사는 여성도 있습니다. 일본 요요기 공원의 이치무라 씨는 텐트를 치며 노숙을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노숙자들과는 다릅니다. 순면 생리대를 팔며 수익을 창출하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노숙인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합니다. 간담회에 참여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물론이고요. 리타 할머니 만큼이나 이 작품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물이고 경순 감독이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동기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여성의 배가 유난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영화의 엔딩에서는 다큐에 출연한 이들의 배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있더군요. 출산을 많이 한 사람들의 배는 유난히 여성들의 배의 상처가 많다는 것이죠.

여성들의 배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위대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섹스와 임신, 그리고 출산을 하는 그녀들의 환경에서 그 출발점이 되는 것은 바로 배라는 것이죠.

그들의 배가 볼품없고 불룩 나와버린 배가 흉하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 출산을 비롯한 그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남성이 할 수 없는 일을 여성들이 해내고 있다는 점에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해야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비아냥이 아닌 진짜 존경심을 말이죠.

 

기륭 노동자들은 현업에 복귀했고 파라소닉과 싸운 사토 씨도 현업에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그레이스 씨는 여전히 판자촌에서 살고 있고, 정부의 방침해 의해 사라진  윤락촌쪽 관계자들과는 연락이 끊긴 상태입니다. 희영 씨와는 어렵사리 연락이 되지만 여전히 그녀가 직접 나서기에 세상은 너무 힘들기만 합니다. 모니카 씨는 남편을 잃었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고 있고, 이치무라 씨는 노숙자이지만 여전히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리아의 노래인 '유토피아'처럼 살기에는 아직 갈일이 멀다는 것이죠.

 

 

 

다큐를 보고 관객과의 대화를 참여하고 경순 감독과의 뒷풀이도 참석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술자리를 하면서 경순 감독 님의 진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경순 감독님은 여성들과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이야기한 감독으로 얼마전 <잼 다큐 강정>을 통해서도 제주 강정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기도 했지요. 다큐에 등장한 인물은 10명... 그들의 이야기를 따로 담아내도 한 편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가 다른 감독을 통해 전해질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갖고 계시더군요. 저 역시 그랬고요.

저는 남자입니다. 남자이지만 생각없는 마초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생각이 있으신 남성분들도 이 작품을 보고 많이 공감하고 이야기 나눠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PS. 제가 올린 이 작품의 리뷰 제목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babae(바바에)'라는 단어는 필리핀어(따깔로그어)로 바로 여성, 아가씨라는 뜻이라고 하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