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서대문구 미근동 163번지...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7번, 8번 출구 앞에 있는 노른자 땅...
어쩌면 이 자리에 관심 갖는 이는 얼마나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오늘 극장 하나가 문을 닫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서울에서 이제 하나 남은 대형 단관 극장이 사라지는 소식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화양극장, 또 누군가에게는 드림 시네마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마지막 서대문 아트홀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상영을 하고 있는 이 곳을 다녀왔습니다.
'철거'라는 단어가 참으로 살벌하게 느껴집니다.
근데 정말 이런 빨강 락카로 칠해진 '철거'라는 글귀를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부천 오쇠동에서도 봤고 용산역 근방에서도 보았으며 기억은 나지 않지만 수많은 재개발 지역에는 어김없이 이 빨강 락카가 그렇게 건물들의 최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964년... 대형 개봉관에서 상영한 영화가 돌고 돌아 이 곳에서 상영을 했던 화양극장은 서울의 대표적인 재개봉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재개봉관이라고 무시하지 마시길... 재개봉관의 힘은 의외로 놀라웠는데요.
홍콩 르와르가 사랑을 받던 1980년대에는 이들 홍콩영화가 재개봉되면서 효자 장르로 이 곳에서 사랑받기도 했으니깐요.
하지만 1990년대에는 홍콩영화에 대한 약발이 약해지던 시점이었습니다.
화양극장은 이후 새로운 주인과 이름을 맞이하게 되지요. 바로 드림 시네마였습니다.
물론 그 때와 다른 점이라면 재개봉관이 아닌 일반 영화와 동등하게 영화를 틀어주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CGV를 시작으로 멀티플렉스가 많아졌고 스카라를 비롯한 극장들이 문을 닫았고 명보극장과 허리우드 극장은 연극 등의 문화공연 전용관으로 바뀌었습니다. 단성사와 피카디리,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가 멀티플렉스로 탈바꿈 하게 됩니다.
이 중 단성사는 그 한계를 이겨내지 못했고 피카디리는 롯데 시네마의 이름을 걸고 극장 영업을 시작해야 했으며 서울극장은 충무로 대표극장이라는 타이틀을 되찾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곳이 대한극장이 유일했으니깐요.
드림 시네마가 결국 택한 방식은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일반 영화를 상영하거나 기자시사회 중심으로, 야간에는 새 영화의 사사회 전용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관객들들의 극장 입장료가 아닌 영화사나 수입사의 대관료로 수입을 이어나가야 하는 상황이엇지요.
드림 시네마는 북적이는 여러 시사회 부스를 대신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공간이었고 엔딩 크레딧은 잘라먹기가 일쑤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림 시네마가 일부 마니아 층에게 여전히 사랑받은 이유는 큰 스크린에 1층 혹은 2층으로 나뉘어진 구조 덕분에 입맛대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곳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70,80년대 극장을 재연하는데도 안성맞춤이죠. 그렇게 드림 시네마는 인공호흡기에 연명하는 그런 느낌의 극장이었습니다.
2009년 5월... 주인은 다시 바뀝니다.
허리우드 극장 3개관 중 실버 영화관을 운영하던 극장주가 이 극장을 인수한 것이지요.
두번째 실버 전용관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이 극장은 서대문 아트홀로 운영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건물주로 부터 청천벽력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 극장을 비워달라는 이야기였죠.
한류 열풍으로 외국인 방문이 늘어난 만큼 외국인들을 위한 숙소가 필요한데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를 대체하던 터를 찾던 중 바로 이 곳이 낙점이 된 것이지요.
실버 영화관이 사라진다는 부분 때문에 일부 서대문 아트홀을 찾던 어르신들의 반발은 컸습니다.
허리우드 극장이 있긴 하지만 좌석수가 많지 않은데다가 극장 위치상 어르신들이 이 곳을 방문하기에는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이었지요. 또 하나의 방안으로 멀티플렉스 두 개 관을 이용하는 것으로 방침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멀티플렉스라는 조건에서 어르신들이 적응을 하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 상황에서 서대문 아트홀의 폐관 소식이 반가울리가 없습니다.
7월 11일 오전 11시...
서대문 아트홀의 마지막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입니다.
이 날은 총 2 회의 상영이 있었고 미리 배포한 관람권을 들고 온 어르신들이 우선 입장하여 영화를 관람하셨습니다.
물론 관람권을 가지고 오지 않은 분들도 무료 관람을 할 수 있도록 하였지요.
이 날 상영된 영화는 1948년 이탈리아 영화인 <자전거 도둑>이었습니다.
다른 극장이었다면 늦게 입장하는 사람들은 입장도 힘들었겠지만 이 날 만큼은 그 모든 것이 허용되는 날이었습니다.
드림 시네마 시절 매점이었던 공간은 지금 사무실이 되었고 그 자리를 대신 하는 것이 떡을 판매하는 간이 매점이었는데 오늘 이 곳도 마지막 영업이었다고 하는 군요.
이 날 취재진들도 많이 찾아왔지만 젊은이들의 방문은 여전히 뜸했습니다. 그러나 이 날 11시에는 350 여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인산인해였습니다.
그들은 떠나는 아쉬움을 이렇게 현수막으로 대신 달래봅니다.
어쩌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였는지 모릅니다.
이 극장을 지키고 싶었던 그 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실래요?
동영상 인터뷰는 거부하셨지만 육성으로 나마 또 한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화양극장 혹은 서대문 아트홀에 대해서 말이죠.
Q> 일하고 계시던 서대문 아트홀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시나요?
A>노인들 문화공간이라 너무 좋았죠. 근데 그게 없어진다고 하니깐 너무 섭섭하잖아요.
Q>호텔로 된다는게 의외인데 요즘은 리모델링을 해서 살리는 방법도 있지 않나요?
A>그렇죠. 그렇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근데 여기는 리모델링이 아니고 아주 없애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호텔을 짓겠다고 하는데 저희들 맘대로 할 수는 없잖아요.
Q>이 곳을 허문다는 이야기는 오세훈 시장 시절부터 나온 얘기가 아니던가요?
A>네... 그렇죠. 그런데 개인재산이니깐 시에서 뭐라고 할 수가 없죠. 우리가 바라는 것은 서울시에서 워낙 비싸니깐 매입은 불가능할테고 시에서 건물을 지어 이런 공간을 만들어 줬으면 해요.
진짜 마지막 상영 시간인 1 시 타임을 앞두고 취재진의 숫자는 더 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화양극장의 마지막을 아쉬워하는 분들의 방문은 줄을 이었습니다.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저는 이 곳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뒤 SNS에서는 앞의 동영상 인터뷰에서 예고했듯이 서대문 아트홀의 대표인 김은주 대표가 삭발식을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극장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과 건물주 혹은 서울시에 대한 불만을 삭발을 통해 나타낸 것이겠지요.
모든 상영이 끝난 시간... 서대문 아트홀은 이제 불이 꺼진 상태에서 그야말로 마지막을 기다릴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동안 많은 극장이 폐관되는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시네 코아가 문을 닫고, 중앙시네마가 문을 닫았으며 중앙시네마에 위치한 인디스페이스가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을 때도 저는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지요.
그 중 관객들을 다시 맞이한 극장은 인디스페이스 소식 뿐입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많았던 요즘... 서대문 아트홀에 대한 소식은 아쉬움을 넘어선 안타까운 생각도 들게 만드네요. 실버 전용관은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앞에도 이야기 했지만 김은주 대표가 운영하는 곳 가운데에서는 낙원상가 허리우드 클레식이 있으니깐요. 하지만 이 극장도 계속 지킬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박원순 시장이 재개발에 대한 계획들을 전면 수정하고 있지만 낙원상가가 낙후된 이상 언젠가는 이 건물도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올테니깐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고작 노인들을 위한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이 말이죠.
노인들의 인구는 급증하고 있고 그들의 시설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 분들이 언제까지 탑골 공원에만 계실 수는 없고 장기만 두기에는 이 분들의 오락거리가 없다는 것이 아쉬운 일이고요. 결정적인 것은 우리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늙어간다는 것입니다. 그건 부정하기 싫지만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현실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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