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입니다. 시원하게 보내고 계신지요?
그런데 저에게는 여름은 그저 잊혀진 계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억지로 여유라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8월 3일... 일출이 아름다운 곳인 정동진으로 갔습니다.
우리에게는 드라마 <모래시계>로 알려진 곳이지만 몇 년전 부터 명물이 하나 더 늘었지요.
초등학교 앞 운동장이 극장이 되는 마법 같은 세상...
제 14회 '정동진 독립 영화제'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왔습니다.
당연히 준비가 덜 되기 전의 시간이죠. 하지만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있으니 '정동진 독립 영화제'의 마스코트인 '우산살 소녀'입니다.
매년 이 영화제의 공식 포스터에는 이 소녀가 숨어 있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죠.
정동 초등학교로 들어서시면 레드 카펫과 함께 '우산살 소녀'와 기념 사진을 찍으실 수 있습니다.
정동진 독립 영화제는 모든 상영작이 경쟁작입니다.
부산, 부천, 전주, 제천 등의 큰 영화제에서는 이 들 경쟁부분과 비경쟁부문으로 나뉩니다만 3일간의 열전으로 치뤄지는 이 영화제는 모든 장편과 단편이 경쟁작입니다.
심사위원? 그런거 없습니다. 관객이 곧 심사위원이니깐요.
이른바 세계 최초의 '현금 박치기 영화제'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도 아마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오로지 동전의 '개수'('액수'가 아니라 '개수'입니다.)로만 정리되며 3일 동안 각각 대상이 선정됩니다.
사실 제가 의외로 다가온 점은 기념품들의 퀄리티였습니다.
국내에 많은 영화제가 있지만 영화제 기념품은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작은 영화제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기념품이 관객들을 기다립니다. 특히나 야외상영을 하는 영화제 특성상 담요 세트도 이 영화제에 꼭 필요한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시원할 줄 알았는데 역시 마을 뒷산의 힘은 무섭더군요. 약간씩 추워집니다. 담요가 필수인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 )
칵테일바도 있네요. 다섯 종류의 칵테일이 판매되며 3,000원에서 4,000원이면 시원한 칵테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저도 크렌베리가 들어간 칵테일 한 잔... 술도 못하지만 술 못하시는 분들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칵테일로 구성이 되었지요,
이 행사 때문에 서울 홍대의 '상수동 까페'라는 가게 주인장 분께서 매년 영화제 기간에는 휴업을 선언하고 여기로 내려오신다고 하네요.
정체불명의 뒷산을 배경 삼아 에어스크린이 놓여져 있습니다.
야외상영을 하는데는 좋은 날씨죠. 빈자리가 많은 이 좌석은 곧 있면 많은 좌석으로 가득차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마술이 곧 펼쳐진다는 얘기죠.
'정동진 독립영화제'의 숨은 공로자들은 바로 자원봉사자들이죠.
'정동진 독립영화제'는 야외상영이라 모기가 극성입니다.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쑥불 원정대'를 조직하고 이들은 쑥을 가지러 다닙니다.
마른 쑥들은 특유의 냄세를 풍기지만 모기 퇴치에는 그만이죠. 심지어는 드라이 아이스를 대신한 무대효과에도 최고!
영화제에는 와이파이 존도 등장하는데요. 저처럼 실시간으로 수다를 떠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와이파이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지요.
(요즘 불미스러운 일로 KT가 욕을 먹고 있지만 이 날 와이파이 존을 준비하시느리라 고생하시는 KT 직원도 멋졌습니다.)
제대로 개막식 시간을 맞춰본 적이 없다는 박광수 프로그래머의 말...
자리가 가득차야 하는 특성상 당초 시간보다 30분 늦은 7시 30분에 개막 식전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1분 늦은 7시 31분에 그 시작을 알렸고요.
식전행사의 MC... <똥파리>의 김꽃비 씨는 이 영화제의 단골 MC이고요.
김꽃비 씨와 같이 <나나나>에 출연하시는 서영주 씨가 남장(콧수염 분장)을 하고 등장합니다.
홍일점인지 청일점인지 갑자기 헛갈려지는 분은 영화 <종로의 기적>의 감독이자 <두개의 문>크레이티브 디렉터로 활동중인 이혁상 감독님입니다.
세 분은 은근히 쿵짝이 잘 맞았지요.
개막식 식전행사의 주인공은 인디밴드 '허클베리 핀'입니다.
최근 5집을 들고 나온 이 팀은 저는 개인적으로 1집의 하드고어스러운 가사가 돋보이는 'Teaher Says'를 더 좋아합니다.
신곡을 비롯해 여러 곡을 연주하고 노래했으며 무대는 열광의 도가니였습니다.
이들의 팬서비스는 영화제가 끝난 뒤 벌어진 뒷풀이 현장에서도 계속 되었습니다.
내년에도 이 분들 정동진에 오실까요?
자... 개막을 알리는 개막 선언 들어보실래요?
개막을 알리고 이 날 다섯편의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칵테일을 들고 가볍게 나누는 관객과의 대화도 인상적입니다.
첫번째 사진은 '단편 1' 섹션의 감독과 배우들... 좌측부터 박광수 프로그래머, <개와 열쇠>의 김희정 감독, <누가 공정화를 죽였나>의 배우 김민지 씨와 한지혜 감독, 그리고 <Etude, Solo>의 유대열 감독... 그리고 두번째 사진은 장편 <투 올드 힙합 키드>의 정대건 감독까지...
이 날 상영도중 장편 <투 올드 힙팝 키드>는 상영도중 영사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큰 영화제였다면 대형사고이죠. 하지만 작은 영화제에서 벌어진 사고는 한편으로는 불쾌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야외 상영이라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다보니 약간의 불편한 부분이지만 금방 고쳐지겠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깐요.
박광수 프로그래머도 많이 아쉬워하시는 듯 싶었지만 아무튼 영화는 마지막까지 상영이 되고 관객과의 대화도 이어졌습니다.
자, 영화제 첫 날이 끝나고 투표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이시나요?
이 분들 중 일부는 안전하게 협찬사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숙소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영화제의 프로젝트 중 하나인 '안전귀가 프로젝트'는 올해에도 이렇게 무사히 진행이 되었다는 것이죠.
3일 '땡그랑 동전상'의 행방은 어디로 갔을까요? 귀여운 꼬마 아이들의 이유있는 월담을 이야기한 <개와 열쇠>가 상을 받았습니다.
김희정 감독은 뒷풀이 현장에서 바로 관객들이 투표한 동전을 모두 다 상금으로 가져가셨습니다. (기분이 좋은 일부 감독들은 수상으로 받은 상금을 뒷풀이 회비로 쏘시는 경우도 있다네요.)
뒷풀이 현장은 일부러 담지는 않았지만 많은 독립 영화계 인사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제가 결코 작은 동네 영화제가 아니라 많은 독립영화인들이 공감하고 열광하는 영화제가 되었다는 것이죠.
아무렴요... 이 영화제가 올해 14 회라는 것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으니깐요.
다음 날 5일... 영화제가 저녁에 시작된다는 점에서 낮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는데 마침 식사를 즐기고 계시더군요.
'기분 좋은 밥상'이란 이름의 이 행사도 중요한 행사입니다. 음식값은 자율적으로 지불... 저도 제 주머니에 천원짜리 한 장과 동전을 털어 밥값을 냈습니다.
재미있는 영화를 무료로 봤는데 이 정도 밥값은 내도 절대 아깝지가 않더라고요.
닭백숙에 잘 먹고 정동 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정동진역 바다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푸른 하늘과 맑은 물이 조화를 이루어 정동진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결코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년에도 정동진으로 다시 가고 싶네요.
음... 그 때는 영화제 로얄석인 모기장 텐트 획득권 이벤트에도 참여하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이 곳은 그 어느 자리도 VIP라고 말이죠.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정동진... 이번 피서로 어떠세요?
PS. 위에 소개한 작품들 중 장편인 <투 올드 힙합 키드>는 시간 되는대로 리뷰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상당히 재미있고 인상적인 다큐라서 꼭 소개해드리고 넘어갈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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