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전자오락실에 대한 기억은 하나쯤은 가지고 계시죠?
잘 나가는 게임에는 동전이 많이 쌓여있고 자리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며 간혹 게임기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죠.
'아저씨... 얘네 장풍이 안나와요!'
오락실이 가진자의 세상이라면 문방구 옆에 간이 오락실에는 아이들이 쭈그려 앉아 스트리트 파이터, 갤러그, 너구리 등의 게임을 즐겼었죠.
시대는 변해서 DDR이라는 펌프 게임이 유행하더니 지금은 거대한 총을 들고 자신이 군인이나 킬러가 된 것처럼 총을 쏘는 게임도 생겨났죠.
희안하게도 그 많던 오락실이 많이 사라졌더라고요. 대신에 대형 멀티플렉스에는 크고 작은 오락게임을 둔 간이 오락실들이 많아졌지요.
그런데 이런 전자 오락게임들이 파업을 하고 다른 게임 세계로 넘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디즈니와 픽사의 절묘한 만남...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입니다.
동전을 집어넣으세요... 투입구에 동전을 넣으면 새로운 게임이 시작됩니다.
어느 대형 게임센터에 낡은 기종의 게임기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다고쳐 펠릭스'...
덩치가 큰 랄프(존 C. 라일리 분/정준하 분, 목소리 출연)가 나타나 주민들이 사는 집을 부셔버리게 되면 황금 망치를 든 펠릭스(잭 맥브레이어 분/김환진 분, 목소리 출연)가 나타나 집을 원상복귀 시킵니다. 그리고 랄프는 주민들에게 떠밀려 옥상으로 추락...
랄프는 수많은 게이머들에 의해 수백, 수천, 수만번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게임 탄생 30 주년 파티에서도 소외되는 랄프는 그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황금매달을 받으면 영웅으로 인정해주겠다는 다고쳐 펠릭스 주민들... 랄프는 무작정 게임센터 서버에서 자신이 매달을 획득할 수 있는 게임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게임은 전쟁 시물레이션 슈팅 게임인 '히어로즈 듀티'... 난생 처음 보는 어두운 화면에 여전사인 칼훈 중사(제인 린치 분/이진화 분, 목소리 출연)의 살벌한 카리스마에 랄프는 기가 죽습니다.
얼떨결에 우주선을 타고 우주괴물을 태워버린 랄프는 레이싱 게임인 '슈가 러시' 게임 맵에 불시착합니다. 거기서 항상 버벅, 지이직~거리는 소녀 바넬로피(사라 실버맨 분/소연 분, 목소리출연)를 만나게 되지요. 이 말괄량이 꼬마는 랄프를 무시를 해도 너무 무시를 합니다만 그녀에게도 소원이 있습니다. '슈가 러시' 레이싱 게임에 출전하는 것이 목표이거든요. 하지만 이 곳의 왕인 킹 캔디가 그녀를 출전시키지 못하도록 방해공작을 펼치고 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우주괴물이 번식에 성공하고, 펠릭스와 칼훈 중사는 랄프를 구하고 엉망진창인 게임 세계를 바로잡고자 '슈가 러시'로 들어옵니다.
한편 '스트리트 파이터'에 장풍 안나가는 류처럼(?) 랄프가 사라진 '다고쳐 펠릭스'는 고장처리 되어 게임센터에서 사라질 위기입니다.
8 비트의 오락게임 악당 랄프... 과연 그는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엉망진창 오락 게임의 세상은 원상복귀 될 수 있을까요?
얼마전인가 한 네티즌이 올린 UCC가 화제였던 적이 있었는데 8 비트 오락게임 버전으로 만든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었습니다.
8 비트라는게 음악도 함축적이며 캐릭터의 움직임도 상당히 느려터진 느낌이 들이지만 복고적인 느낌을 되살리는데는 이만한 것도 드물죠.
<주먹왕 랄프>는 이런 추억과 향수에서 힌트를 얻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작품에는 무려 세 가지 종류의 게임이 등장하는데요. 각기 다른 느낌과 스타일의 게임을 사용한 점에서 인상적이죠.
가령 랄프가 살고 있는 '다고쳐 펠릭스'는 사각형에 중점을 두었고 8 비트의 화면과 캐릭터의 움직이 등장하는 그야말로 원초적이고 전통적인 게임 스타일이죠.
이에 비해 삼각형과 어두운 느낌이 드는 전형적인 슈팅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히어로즈 듀티'는 영화 <에일리언>에서 영감을 받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의외로 디테일하죠.
마지막으로 둥근 원형이 많이 등장하고 밝고 다양한 색상이 등장하는 '슈가 러시'는 요즘 유행하는 레이싱 게임의 대표 격이죠.
'카트 라이더'나 '마리오 카트'를 연상하게 만드는 느낌의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느낌과 스타일이 다른 것들이 하나에 들어 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디즈니와 픽사는 이것을 완벽하게 구현하는데 성공합니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최근 개봉된 드림웍스의 <가디언즈>와 더불어 마치 스타일이 뒤바뀐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이 작품 <주먹왕 랄프>입니다.
동화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해서 악당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인데요. <슈렉>, <메가마인드>, <슈퍼배드>를 이은 이른바 '악당 갱생 프로젝트'(?)가 아니었나 싶네요.
재미있는 점은 이 작품은 악당들이 떼로 등장한다는 것이죠. 악당 게임 캐릭터 모임의 장면은 그래서 상당히 재미있는 장면이라는 겁니다.
특히나 '팩맨'의 캐릭터는 귀엽기까지 하지요. 실제 이들 악당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디즈니는 세가, 닌텐도 등의 업체를 일일히 방문하며 캐릭터를 삽입시키려는 노력을 했었죠. 덕분에 이 작품은 각 게임회사를 대표하는 악당 케릭터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반갑기까지 합니다. (이는 영화의 엔딩크레딧에서도 다시한번 보여주는데요. '스트리트 파이터'의 류와 함께 자동차를 부셔버리는 랄프의 모습도 등장합니다.)
<주먹왕 랄프>는 어떻게 보면 디즈니와 픽사 작품들과 어느 정도 연결선상에 있는데요.
디즈니의 전작 <업>, <윌-E>, <토이스토리> 시리즈 등에서 보여지듯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한번 상기 시킨다는 점에서 <주먹왕 랄프>는 상당히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죠.
이 작품에서는 터보라는 악당 케릭터가 등장하는데요. 다른 게임에 무단 침입하여 상대편 게임과 자신의 게임 모두 망가뜨리는 일종의 바이러스 역할을 하게 된 인물인데요. 랄프에게 터보가 될거냐고 다른 이들이 묻는 장면에서 악당이 악당으로만 살아야 하는 숙명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본심은 그게 아닌데 악당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고달픈 것이죠.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악역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본심은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거든요.
이 작품은 더빙판과 오리지널 버전으로 나왔는데요. 유료시사에서는 안타깝게도 오리지널 3D버전은 상영이 되지 않아 아쉬웠더군요.
울며 겨자먹기(?)처럼 우리말 더빙 3D 버전으로 관람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랄프 역은 감초 역할들로 헐리웃에서 사랑받는 존 C. 라일리가 맡았으며 어쩔 수 없이 랄프와 적대관계가 되어버린 펠릭스 역에는 시트콤 <30 ROCK>의 잭 맥브레이어가 맡아 열연을 했습니다.
국내 더빙버전에는 정준하 씨가 랄프 역을 맡았는데요. 솔직히 기대반, 걱정반인 이유가 배우가 아닌 개그맨이나 가수들은 연기력에서는 좀 약한 면이 보인다는 것이죠. 그러나 의외로 뮤지컬 경험이 많았던 정준하 씨는 더빙을 하는데 있어서 발성이 생각보다 괜찮았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더구나 일부 더빙판 애니메이션에서 개그맨들의 경우 자신의 유행어를 남발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정준하 씨는 애드립을 자제하여 깔끔하게 더빙을 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펠릭스 역은 영화 <마스크>의 짐 케리 목소리로 익숙한 김환진 씨가 맡았는데 이 분이 올해 나이가 예순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활약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에서는 음악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요, 주제가 격인 아울 시티의 'When Can I See You Again?'가 영화의 엔딩을 장식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디즈니 영화에서는 드물게 아시아 아티스트를 기용한 모습도 보이는데 일본의 인기 걸그릅인 AKB48이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워쇼스키 자매의 <스피드 레이서>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일본 뮤지션을 기용하여 그것도 일본어 가사로 노래를 부른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 작품에서는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게임 '슈가 러시'(Sugar Rush)의 게임 테마를 불렀습니다.
<주먹왕 랄프>은 디즈니와 픽사의 여전한 엔틱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데요. 거기에 새로운 것도 기꺼이 맞이하려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른바 '온고지신'의 정신을 마음속에 새겨 두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에도 낡은 것들은 사라지고 있지만 그 낡은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버리기 보다는 새로운 것들과 어떻게 융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죠.
그 점에서 <주먹왕 랄프>는 디즈니가 항상 작품끝에 권선징악의 메시지로 마무리를 짓는 모양새와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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