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발굴'은 아마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사랑에 빠진 좀비라는 설정을 무섭게도, 가볍게도 다루지 않아 좋았습니다. 영화에서 기억이라는 의미가 매우 중요하게 다가오는데 감수성을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느낌도 듭니다.
이 영화, 이렇게 보세요
좀비를 소재로 했던 영화들은 매우 많습니다. 언급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죠. 그렇다면 좀비를 특이한 시각에서 다룬 영화들은 없을까라는 의문이 드시리라 생각되는데요.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새벽의 저주>를 황당하게 패러디한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워킹 타이틀이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이 끔찍한 이야기를 코미디로 만들었다는게 의외죠.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좀비에 대한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 <이웃집 좀비>(2009)가 있는데 좀비가 치료후 인간세상에 적응하는 과정 등의 신선한 발상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몇 년전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 CDC는 좀비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대피 경로를 미리 알아둔다, 긴급 연락처를 확보한다, 구급상자를 준비한다, 가족과 헤어질 경우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정한다'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물론 CDC는 좀비는 세상에는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불의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으로 소개하였다고 말합니다.
좀비...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핵이라던가 방사능 등의 위험 노출이 많고 테러가 끊이지 않는 이 시대에서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고 할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결코 불가능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비가 사랑을 하고 자연적으로 치유가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이것도 더 황당한 일이라고 보는데요.
감성 좀비의 러브 스토리... 영화 <웜 바디스>(원제 Warm Bodies)입니다.
사람들로 북적대야 할 공항... 어둠속에 느린 걸음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닙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살아도 살아있는게 아닌 좀비입니다. 그 좀비들의 틈바구니 속에 한 사내가 보입니다.
'R'(니콜라스 홀트 분)로 시작하는데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좀비 동료 'M'(롭 코드리 분)이 있고요.
한편 좀비를 소탕하기 위한 무리들이 보입니다. 거기에는 줄리(테레사 팔머 분)라는 여인도 있고요.
좀비들와 무장팀의 만남... 그런데 R은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분명 그는 좀비인데 말이죠.
R은 줄리의 남자친구였던 페리(데이브 프랑코 분)를 공격하게 되고 그의 뇌를 먹기 시작합니다.
뇌를 먹게 되면 그 죽은 사람의 기억을 공유하게 되는 것 때문에 R은 페리와 줄리에 대한 기억들을 알게 됩니다.
더욱 더 그녀가 좋아졌고 좀비의 본성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힘은 M을 비롯한 다른 좀비들에게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한편 자신들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리고 싶어했던 R은 높은 벽으로 가득찬 인간 보호구역을 뚫고 줄리에게 다가갑니다.
하지만 좀비는 무조건 사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줄리의 아버지이자 군인인 그리지오(존 말코비치 분)는 R을 비롯한 좀비 사살작전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돌아가고 있는 좀비들에게는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좀비의 본성을 못버리고 결국 해골로 변해버린 '보니'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지요.
과연 이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슬픈 사랑이야기는 세드엔딩이 될까요? 아니면 해피엔딩이 될까요?
이 작품이 영화화 된 계기가 특이한데요. 물론 이 작품도 소설이 원작입니다.
아이작 마리온의 소설이 원작인데 온라인에서 선을 보인데다가 책으로 출간당시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서 <웜 바디스>에 관한 이야기는 겨우 7페이지에 해당되는 아주 짧은 단편소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장편으로 하겠다는 것은 좀 위험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바로 뇌종양 환자의 멋진 인생을 그린 실화 <50/50>를 연출한 조나단 레빈이 메가폰을 잡기로 한 것이죠.
우리는 이미 <50/50>을 통해 암울하고 우울해질 수 있는 불치병 환자가 세상에 맞써 싸우며 고난을 이겨내는 모습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기도 했는데요. 조나단 레빈은 이번에는 좀비 이야기에서 희망을 가져보자는 의미로 이야기를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근데 정말 재미있는 상황은 좀비 R의 시선에서 영화가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상황에서 좀비들과 '으으으~~'로 끝나는 대화를 나누며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모습부터 시작해서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로맨틱하게 보여주고 있으니깐요. 사실 이 영화의 장르를 로맨틱 코미디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호러로 하기에도 상당히 애매한데 어쨌건 사랑을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이고, 멜로 영화라고 말하는 것이 옮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어떻게 보면 R은 희미하지만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좀비라는 것이 기존의 좀비들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폐허가 된 비행기 내부에서 혼자 레코드 판을 틀어 음악을 듣는가 하면, 자신이 뜯어먹고 있는 인간의 패션을 스켄하는 장면도 등장하니깐요.
여유로움에 로맨스까지 갖춰져 있는 그를 보고 정말 좀비가 맞을까라는 의문을 갖기 충분하지요. 이는 기존의 좀비 영화의 룰을 해체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에서도 이 영화와 어울리는 몇 작품 이야기를 드렸지만 이런 좀비들의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본 작품들이 의외로 최근에 많이 쏟아졌다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하드고어 적인 느낌이 강하고 대부분이 피로 난도질 되는 모습들을 보다보면 징그러워서 못봐줄 지경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는 대부분이 청불 관람 등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잡종 인간들의 하이틴 무비라는 점에서 그 모습을 달리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죠. 최근에는 미드 <틴 울프> 같은 작품이 등장하면서 괴기스러운 느낌을 지녔던 늑대인간이나 흡혈귀, 좀비들을 다른 방향으로 보게 되는 경향으로 변하게 된 것이죠. 이 작품 <웜 바디스>도 시대적 상황에 맞게 나타난 그야말로 운이 좋은 영화라고 볼 수 있지요.
요즘 젊은이들의 스타일에 만든 작품답게 고뇌하는 좀비 R의 독백들도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내 이름은 무엇이고 왜 사람들을 물어 뜯어야 하는가에 대한 죄책감들이 들어 있지요. 그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면서 그 고민들은 더욱 커지고 스토리의 속도도 더욱더 빨라진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의 일등공신은 R의 니콜라스 홀트입니다. <어바웃 보이>(2002)의 당돌한 꼬마가 이렇게 자라주었으니 여성 관객들은 그야말로 땡큐인 상황이죠.
거기에 줄리의 테레사 팔머는 니콜 키드먼 이후 미아 바시코브스카와 더불어 최근 활약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 여배우들의 계보를 이어주고 있으니 멋진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외에도 존 말코비치나 롭 코드리 등의 배우들이 이들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영화를 보는 재미는 클 수 밖에 없지요.
아울러 이 영화에는 <스파이더 맨>시리즈와 <오즈>로 알려진 제임스 프랑코의 동생인 데이브 브랑코가 등장합니다. 형도 훈남인데 동생도 만만치가 않죠.
이 영화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음악들도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R의 심리를 이야기하는 부분이라던가 R이 낡은 비행기 안에서 줄리에게 들려주던 음악 등이 활용되어 멋진 영화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만 이 영화는 스코어 버전으로만 나온 상태라서 영화속 팝을 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많은 팝음악이 흘러나왔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음악이 마음에 드네요. Broken Bells라는 록밴드의 'October'라는 곡입니다. (한가지 알아두실 점은 이 영화에 예고편으로 등장했던 The Troggs의 'With A Girl Like You'는 영화에 나오지 않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 낚이셨습니다. ^^; 이 노래는 영화 <접속>에 나왔던 곡이기도 하죠.)
이 영화의 엔딩은 좀비들의 치유과정 장면인데요.
앞에 소개했던 <이웃집 좀비>와 <새벽의 황당한 저주> 모두 엔딩에는 좀비들의 치유과정 혹은 인간과 함께 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웃집 좀비>처럼 치료약이 발견되어 인간이 되었지만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살아남은 인간들이 그들을 공격하는 악순환이 되기도 하고 <새벽의 황당한 저주>처럼 두꺼운 줄에 묶이긴 하지만 그래도 친했던 친구와 오락 게임을 같이 즐기며 우정을 나누는 장면도 있습니다.
그에 비해 <웜 바디스>의 엔딩은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든 벽이 허물어지고 인간과 좀비가 되었던 사람 모두 평화를 되찾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는 것입니다. 좀비이기전에 그들도 평범한 인간이었으니깐요. 이름을 되찾고 같이 공놀이를 즐기며, 비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빌려줄 수 있는 호의를 배풀어주는 것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있음이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죠.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떨까요? 살아만 있지 배려와 호의가 없는 모습에서 우리는 좀비로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졌습니다.
감성이 메말라버린지 오래였던게 아닌가요? 출근하고 사무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퇴근하고, 가족과의 대화는 거의 사라지고... 잠들고, 다시 일어나고...
인간으로 위장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좀비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지만 좀비처럼 살아가고 우리들... 여러분, 행복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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