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러스트 앤 본]불구의 몸... 과연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변.

송씨네 2013. 5. 7. 18:30

 

※영화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불가피한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주의바랍니다.

 

이 영화, 이렇게 보세요

불구의 몸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둘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그 삶을 극복하거나 말이지요. 불구의 몸인 여성과 사랑을 한다는 이야기에서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가 떠오르시겠지만 이것이 사랑이 아닌 우정이었다면 <언터처블 : 1%의 우정>(2011)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140자로 말해봐!

'몸이 이렇게 불편한데 그래도 날 사랑해 줄 수 있나요?' 어쩌면 이 질문은 우리에게 하고 있는지도... 마치 실패한 사람들의 모임 같아도 이들 모습에서는 작은 희망이 보이더군요. 그 작은 희망에 관해 얘기하는 영화입니다.

 

저는 장애인 관련 행사를 생각보다 많이 다닌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은 거의 그런 곳과의 인연은 없지만 그래도 장애인이라던가 몸이 불편한 분, 약자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하는 편이지요.

저도 참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누구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 될테니깐요.

 

장애가 되는 방법은 선천적으로 태어날 때 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가진 사람이 많다고 봅니다.

그들이 장애를 갖고 싶어서 장애를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 부터 원하는 사람도 절대 없을테고요.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지속적인 치료로 완치하는 경우가 있는데 문제는 그것이 힘들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둘 중의 하나를 선댁하게 되지요.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오히려 이런 자신의 삶을 전화위복으로 갖고 새로운 삶에 도전을 거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지요.

장애를 극복하는 한 여성과, 철없는 한 남자...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영화 <러스트 앤 본>(원제 De rouille et d'os / Rust and Bone)입니다.

 

 

 

 

 

한 남자가 아들로 보이는 아이를 이끌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 목적지는 있어 보이는데 어딘가 불안한 모습이지요.

남들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기차에서 끼니를 떼우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이기도 합니다.

알리(마티아스 쇼에나에츠 분)는 아들 샘(아만드 버저 분)을 데리고 누나 안나(코린느 마시에로 분)의 집으로 갑니다.

누나 역시 살림살이는 나은 편은 못됩니다. 대형 마트에서 캐셔로 일하고 있고 부업이라고 해봤자 강아지들을 잠시 키워주는 댓가로 받는 돈이 전부이니깐요.

알리는 무명시절 복서였던 것을 이용해 클럽의 경비로 나서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에 취객과 시비가 붙은 스테파니(마리옹 꼬띠아르 분)을 구해주게 됩니다.

알리는 손을 다친 상태에서 그녀의 집에 들어오게 되고 스테파니의 남자친구인 리차드(장-미셀 코레이아 분)도 보게 되지요.

스테파니의 직업이 범고래 조련사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알리는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습니다. 쇼를 진행하던 스테파니는 범고래의 이상 행동으로 인해 세트가 부서짐은 물론 두 다리를 잃는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었고 외로웠던 그녀는 알리를 찾게 됩니다.

불편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수영을 하면서 차츰 안정을 찾게 됩니다.

한편 알리는 그 사이 한 대형마트의 경비원이 되어있었고 회사에서 직원들을 감시하는 몰카를 설치하러 왔던 마샬(보리 라네스 분)에게 내기 격투기 싸움을 제안 받게 됩니다. 비공개 장소에서 내기 도박으로 한 쪽이 쓰러질때 까지 싸우는 그야말로 개싸움인 것이죠. 스테파니를 이끌고 경기에 참여한 알리는 점차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몰카 사건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얼떨결에 알리 역시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안나가 일하는 마트의 몰카 역시 문제가 되면서 유통기한 임박직전의 식품들을 훔쳤다는 이유로 그녀 역시 마트에서 짤리게 됩니다.

샘을 대신 맡아 키워졌던 안나로써는 분노하게 되었고 알리를 내쫓게 됩니다.

샘만 남겨놓고 떠난 비정안 아버지인 알리... 하지만 몇 달후 다시 재회하게 되고 이들의 행복은 계속되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는 사건은 이들을 힘들게만 만듭니다.

 

 

 

 

 

 

 

<러스트 앤 본>은 두 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하나는 장애인과 일반인의 사랑이야기가 그 첫번째이며, 두번째는 가족간의 화합이 이루어지는 상황들을 다룬 작품이라는 것이죠.

영화계에서는 오랜동안 활동했지만 의외로 다작은 절대 만들지 않는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작품입니다.

국내에서는 2009년 작품인 <예언자>를 통해 그만의 작품세계를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다작을 고집하지 않고 천천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려는 그의 고집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그렇다면 이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요?

우선 장애인과 일반인의 사랑이야기라는 부분을 생각해 본다면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의도하지 않은 사고로 불구가 된 여인을 맞이한 남자의 상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스테파니는 잘나가는 범고래 조련사였고 불의의 사고로 다리가 잘리게 됩니다. 그녀는 왜 자신에게 이런 불행이 생겼는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사랑하던 애인도 잃었고 직장도 잃어버렸습니다. 다리를 잃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말이죠.

하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실망하고 채념하는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과 달리 조금씩 재활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알리를 통해서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요.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좀 어딘가 불안해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알리는 어딘가 모르게 바람둥이의 끼가 보였고 스테파니를 그저 섹스파트너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출장'이라는 문자를 보내면 자신에게 와달라는 스테파니의 요청을 절대 거절하지 않고 즉각 다가오지만 그들에게서 섹스는 그냥 사랑해서 나누는 섹스라기 보다는 우정의 섹스(?)로 그냥 동정어린 마음에서 그녀에게 다가오는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로 일반 통행이던 그들에게서 합의점을 찾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워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는 알리가 길거리 격투 내기에서 스테파니를 데려오는 모습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사랑해서 데려왔기 보다는 친구라서 데려왔고 그가 도망자 신세가 되면서는 그녀를 비지니스적인 파트너로 이용하게 됩니다. 그녀가 생뚱맞게 불편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중고차를 구입하는 장면만 봐도 그렇죠.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곧 바뀌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해보기로 하죠.

 

두번째는 가족의 의미를 회복한다는 점인데요.

영화에서는 부인을 놔두고 아들 샘이 아버지인 알리를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별거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원치 않은 아이의 등장인지도 알수가 없지요.

하지만 앞에 열거한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그냥 알리는 바람둥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이런 부분으로 본다면 아들 샘의 등장은 원치 않은 등장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죠. 아들의 양육을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고 하니깐요.

개를 맡아키우는 누나 안나 덕분에 이들이 살 수 있는 것이지만 아이가 강아지 우리에 들어가는 행위를 심하게 혼내고 그 냄새에 경멸하거나 격투기 대회 영상에만 집중하고 아들의 상황은 집중하지 않는 모습에서는 그가 정말 돈을 벌기 위함이 정말 아들을 위한 것일까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아들을 버리고 갔으니 안나나 스테파니 입장에서도 알리는 참으로 비정한 아버지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쉬웠을 것입니다. 아마 관객들도 그렇게 느꼈겠지요.

그리고 화면은 몇 개월 후로 전환이 되면서 이들의 삶이 전환점을 향해 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나의 남편인 포우에드(무라드 프라레마 분)가 이끄는 트럭이 도착하고 거기에는 아들 샘이 타고 있었던 것이죠.

폭풍우와 눈바람을 뚫고 지나가는 트럭의 모습을 보더라도 앞으로의 상황들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살짝 암시하고 있지 않았나 싶은데요.

역시 그것은 적중하고야 말았던 것이죠. 아들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들에게 사고가 벌어집니다.

얼어버린 호수에 빙판이 깨지면서 샘이 물에 빠지게 되지요.

이 때부터 알리는 부성애를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미친듯이 주먹으로 얼음을 깨서 아들을 구출하려고 했던 것이죠.

손에는 피범벅이 되었고 아들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이런 자신의 슬픔과 외로움음 달래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깨닫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 스테파니의 전화가 그에게 반가웠던 것은 당연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과연 이들 샘과 스테파니의 관계는 회복되었을까요?

영화는 애매한 결말을 보여줍니다. 이들 세 사람이 서로의 손을 붙잡고 밖으로 나가는 장면에서 마무리되는데 이것을 해피엔딩으로 일단은 봐야할 것 같지만 앞에서 봤던 알리의 행동을 봐서는 이들의 모습을 완벽한 해피엔딩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스테파니를 잠시 스쳐가는 섹스 파트너로 생각했고 외로웠을 때 다가온 샘 역시 알리에게는 희망으로 보였겠지만 만약 알리가 승승장구하여 자만한 나머지 이들을 잊게 된다면 이들의 모습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확률이 충분하지요.

다만 이런 불안정한 그들의 삶은 계속 될 것이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의 관계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의외로 이 영화에서는 시사적인 장면도 등장하는데요. 바로 직장인을 감시하는 몰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동자들이나 노동조합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기업이나 단체가 많았는데요. 이게 유독 우리나라만 심한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물론 영화 속 안나의 행위는 잘한 것이 아니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차라리 폐기처분하는 것보다는 그냥 이렇게 놔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텐데 어런 저런 이유로 핑계꺼리를 만들어 직원들을 자르는 행위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이 영화는 마리옹 꼬띠아르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뤽 베송의 <택시>에서 그냥 말괄량이 아가씨라고만 생각했던 우리들이잠 그녀가 점차 새로운 연기들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그동안 그녀의 진면목을 모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라비앙 로즈>(2007)에서 노래하는 종달새 에디트 피아프가 되어 연기한 모습만 봐도 그렇죠.

이후에도 그녀는 <인셉션>이나 <미드나잇 인 파리>, <컨테이젼> 등의 다양한 감독과 장르의 영화에 출연해 그냥 뜨고 지는 여배우가 아님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알리 역을 맡은 마티아스 쇼에나에츠가 좀 생소한 이름이라고 하시겠지만 의외로 많은 작품들에 출연하였으며 '프랑스의 라이언 고슬링'이라는 칭찬도 받고 있는 배우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연기스타일로 '제 2의 OOO'이라는 칭호는 받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음악들은 특별히 눈여겨 볼 것은 없지만 영화의 내용 중 범고래 쇼에 등장한 Katy Perry(케이티 페리)의 'Firework'는 너무나도 유명한 곡이죠. 스테파니의 재활을 돕기 위해 잠시나마 이 음악은 한 번 더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른 곡을 소개할까 하는데요. 엔딩 타이틀에 흘러나오는 두 곡이 인상적입니다.

그 중에서 좀 긴~ 노래가 하나 있는데 하나 소개해 드리죠. Bon Iver(본 아이버)라는 그룹의 'The wolves'입니다. 아마 이 영화의 영상과는 잘 들어맞는 노래이지 않을까 싶은데 뮤직비디오도 웬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나네요.

 

 

 

 

 

 

 

 

<러스트 앤 본>은 과연 장애인들을 우리가 사랑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담은 영화입니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는 의문이지요. 앞에 소개한 <언터처블...>처럼 우정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런 우정이 사랑이 된다면 <오아시스>처럼 힘든 고난을 겪음에도 아름다운 사랑이 될 수 있겠지요.

아직 철모르는 어느 네티즌이 이 영화에 별 하나를 주었습니다만 세상을 더 살다보면 이런 영화가 왜 우리에게 더 필요한지 알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완전한 결말이 어쩌면 더 현실적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해피엔딩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