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즐긴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 여행을 위해 기차를 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기차가 여행수단이 아닌 피난을 위한, 살기 위한 수단이라면 어떨까요?
살기 위해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후퇴는 곧 패배인 상황입니다.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이 글로벌하게 준비한 영화... <설국열차>(Snowpierce)입니다.
가깝고도 먼 미래...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세상은 이상한 현상들이 계속됩니다.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CW-7이란 물질을 사용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지구를 얼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폭동이 일어났고 유일한 대안은 월포드(에드 해리스 분)가 운영하는 철도회사의 열차가 해결책입니다.
이 열차가 지구 한바퀴를 돈 것도 어언 17년이 흘렀습니다. 무단출입하여 이른바 꼬리칸을 점령한 이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며 윗칸에서 나눠주는 이른바 단백질 블록으로 삶을 유지하는 상황입니다.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을 비롯한 꼬리칸 사람들을 윗칸을 점령하기 위한 나름의 대책을 마련한 상황입니다.
그들의 쿠테타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순간... 조금씩 한 칸, 한 칸 앞으로 전진하게 됩니다.
하지만 메이슨(틸다 스윈튼 분)을 비롯한 윌포드의 하수인들은 꼬리칸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꼬리칸 사람들은 열차의 설계책임자였던 남궁민수(송강호 분)과 그의 딸 요나(고아성 분)을 구출하여 더욱더 힘을 모읍니다.
커티스만 바라보는 해바리기 에드가(제이미 벨 분)와 꼬리칸의 정신적인 지주인 길리엄(존 허트 분)도 이들의 여정에 동참합니다.
사랑하는 자식들이 앞으로 끌려나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타냐(옥타비아 스펜서 분)와 앤드류(이완 스램너 분)도 그들과 같이 갑니다.
앞으로, 앞으로... 호화로운 삶과 흥청망청 사는 앞칸 사람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그들은 이 열차의 심장인 엔진을 점령해야 합니다.
과연 이 쿠테타는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하나의 헤프닝이 될까요?
이 작품을 우선 이해하려면 원작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는데요.
장 마르크 로셰트와 자크 로브의 동명의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Le Transperceneige)가 원작인 것이죠.
봉준호 감독이 단골 만화가게에서 읽은 이 작품이 그가 영화로 옮기고 싶을 정도의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봉 감독을 '봉테일'이라고 부르듯 그의 영화에서의 영상은 디테일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영화에 많은 기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박찬욱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으니 두 사람의 생각이 영화에 반영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이 영화는 이른바 왕을 깨러가는 용사들이 등장하는 '끝판왕 깨기' 스타일의 영화입니다.
앞칸으로 갈 수록 더 악날한 악당과 무기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빈약한 무기와 적은 인원으로 그 수많은 인원들을 물리치고 윌포드가 있는 앞칸으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단순히 끝판왕을 깨러가기 위한 사람들의 영화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단순하게 이 영화를 이런 내용의 영화로 만들었다면 <설국열차>는 상당히 뻔한 영화가 되었을테니깐요.
<설국열차>는 엔딩으로 가서야 이 영화가 전달하고픈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우선은 열차라는 하나의 공간이지만 이 공간은 공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하나의 나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죠.
모든 이들이 추위로 인해 얼어죽었고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피튀기는 땅위에서의 한바탕 전쟁을 치루었기 때문이죠.
그야말로 최후의 인원이 살아남은 상황에서 이 열차에서는 그 인원을 추려내기 위해 다시 전쟁을 치룬다는 것이죠.
70% 이상이 몰살당했는지 확인하는 윌포드와 메이슨의 모습은 인구억제를 시킬 수 없다면 죽임으로 그것을 대신해야하는 아주 잔인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근데 왜 하필이면 꼬리칸부터인가 라는 의문도 들죠. 윗칸은 지식인층과 부자들이 탑승하는 일종의 퍼스트클레스 같은 공간입니다.
계급이 높은 사람들은 희생을 시키지는 않지요. 이상하게 그것이 하나의 불분률이 되었고요. <설국열차>에서의 탑승객의 상황도 다를바가 없죠.
아울러 이 영화는 사상교육을 통해 잘못된 가르침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는데 선택된 아이들은 귀족스러운 교육환경에서 공부를 하며 그것도 모자라 윌포드를 신격화 하면서 그의 사업이념이니 출생스토리를 화면으로 나열합니다.
근데 이런 모습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요? 마치 윌포드를 숭배하는 모습은 앞의 메이슨의 모습에서만 끝나는게 아닌데 북한의 김일성을 비롯한 그들의 직계 가족들을 숭배하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찬양가를 부르는 대목과 윌포드에 대한 찬양송 역시 마찬가지죠.
윌포드의 열차는 하나의 공화국이자 독제자의 왕국으로 밖에 보일 수 없는 것이죠. 여기서 보이는 부익부 빈익빈의 모습이 더해지면서 북한을 비롯한 자유롭지 못한 일부 나라의 모습을 그대로 대입시킨게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도 드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수많은 배신과 비밀이 밝혀집니다.
믿었던 사람이 윌포드와 모종의 거래를 하게 되는 부분도 그렇고 그렇게 그들이 먹던 단백질 블록의 비밀이 뭔지를 알게 되면서부터는 상당히 큰 충격을 받게 되지요. (많은 분들이 이야기 하시듯 그냥 양갱이라 생각하고 먹는다면... 정말 괜찮을까요?) 단백질 블록을 보면서 몇 년전 봤던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2006)이 떠올랐는데 <설국열차>처럼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주민들도 주식이 있는데 '하드'라는 이름의 주식이자 환각성분의 주원료가 <설국열차>의 그것처럼 알고나면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부분이죠.
윌포드가 꼬리칸에 일종의 거래를 하는 사람을 심어놓은 것도 앞에 이야기한 인구를 줄여 나름 열차의 모든 사람들이 풍요롭게 살고자 한다는 것에 그 목표라고 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1960~1970년대 '하나만 낳아 잘기르자'며 운동을 펼친 것이나 지금 중국이 인구증가 억제를 위해 한가정 한자녀를 갖는 운동을 펼치는 부분도 생각해본다면 인구를 줄일 수 없다면 저런 잔인한 행동이 불가피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물론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은 어떻게든 천벌을 받아야겠지만요.
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윌포드가 아주 순순히 커티스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는 장면에서 볼 수 있는데 앞에 이야기한 수많은 비밀을 알게되면서 커티스는 큰 충격에 빠지게 되고 그를 무찌르기 위해 쿠테타를 벌인 부분조차도 허무함을 느끼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상황에서 새로운 앤진의 지배자이자 열차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은 과연 그에게 행복한 일일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윌포드처럼 똑같이 속물로 남느리 비극적인 결말로 끝을 맺는 것도 그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관객들은 반대로 맨붕상태로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최후의 생존자로 남은 이들이 설원위에 그것(역시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세요!)을 바라보면서 아직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전형적인 열린 결말입니다만 봉준호 감독이 이미 <괴물>을 통해 이런 결말을 만들었던터라 그렇게 쇼킹한 결말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글로벌 프로젝트답게 정말 등장인물이 많습니다.
봉준호 감독과는 뗄 수 없는 관계인 송강호 씨와 고아성 씨는 그렇다치더라도 미국대장으로 사랑받고 있는 크리스 에반스와 시크한 이미지와 달리 다양한 연기로 역시 사랑을 받고 있는 틸다 스윈튼을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입니다.
이외에도 <빌리 엘리어트>를 시작으로 이제는 훈남으로 자라준 제이미 벨, <멜랑콜리아>의 존 허트, <트루먼 쇼>의 에드 헤리스, <헬프>의 옥타비아 스팬서까지 정말 저 많은 이들을 어떻게 동양인 감독의 영화에 불러모았느냐가 의문스러울 정도로 환상의 캐스팅이죠. 아울러 영화에서는 이름없는 선생님으로 등장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보여준 알리슨 필도 등장하여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과거 계급사회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의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있으며 공산권 국가인 중국 같은 나라도 그 자유의 문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죠.
그렇다면 대다수의 균형과 발전을 위해 못살고 힘든 삶을 사는 이들은 그냥 낙오시키고 이대로 전진해야 할까요?
그리고 '너희들은 더이상 가망이 없으니 포기해!'라며 그들에게 자폭을 요구해야 할까요?
<설국열차>는 다소 어려운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영화지만 그렇게만 어렵게 생각할 영화는 아닌것 같습니다.
물론 합리적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듭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있냐고요?
그건 윗분들이 일단 알아서 하셔야겠지요. 다만, 당신들을 위해서만 정책을 펼치고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떠드신다면 당신도 윌포드와 다를바 없는 속물이겠죠? 안그런가요?
PS. 영화의 퀄리티와 달리 홍보방식은 빵점이었지요.
설국열차 서포터즈라고 할 수 있는 종이 패스를 우편물로 받은 사람중 한명이었습니다만 모든 프리미어 시사는 다 떨어졌지요.
더구나 당초 알려진 이 종이 패스를 가진 이들을 상대로 최초시사를 예상했지만 CJ onE에 우선권을 준 행사는 최악중의 최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쇼케이스의 경우도 영화상영이나 줄거리 하이라이트가 아닌 비오는 날 기념품 받고 스템프 찍기가 고작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쉬움이 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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