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지구, 제한적 배급, 레이져 건으로 무장한 사람들, 인간을 대신하는 사이보그 등등...
미래를 이야기하는 영화의 대부분은 이런 뻔한 소재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죠.
그런점에서 잘사는 선진국도 아닌 낯선 땅 남아공애서 현지인과 외계인이 같이 정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주던 <디스트릭트 9>(2009)는 발상이 특이했던 영화로 기억이 됩니다. 더구나 이게 큰 제작비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더 놀라게 되었지요.
그리고 몇 년이 흘렀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진과 배우가 다시 모였습니다.
댜시 지구이고, 멀지 않은 미래이자 황폐해진 지구를 보여줍니다. 영화 <엘리시움>(Elysium)입니다.
서기 2154년 지구...
지구는 황폐해 사람이 살기 힘들며 설령 사람이 산다고 하더라도 가난한 이들이 쓰레기 더미에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부유층들은 우주에 엘리시움이라는 대형 우주정거장처럼 생긴 것을 만들고 거기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의 나라같은 곳이고 못고치는 병도 거의 없을 정도죠.
어릴적 고아로 살아가던 맥스와 프레이는 엘리시움을 동경하고 있었으며 고아원에서 보이지도 않는 미지의 행성을 바라보며 이 곳에 꼭 데려가겠노라고 맥스는 프레이에게 약속 아닌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의 몇 만배에 해당되는 상황입니다. 잡범으로 전과만 많았던 맥스(맷 데이먼 분)은 로봇을 만드는 공장에 어렵게 취직해 그나마 근근히 살아가는 편이며 프레이(앨리스 브라가 분)은 훌륭한 의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엘리시움을 동경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던 와중 불의의 사고로 밀폐된 기계에 갇혀버린 맥스는 방사능에 오염되어 공장에 쫓겨나게 되고 프레이는 자신의 딸 마틸다(앰마 드램블리 분)의 백혈병을 치료를 해야하는 상황입니다. 당연 두 사람에게 모두 필요한 것은 엘리시움의 만능 치료기였던 것이죠.
한편 엘리시움의 차기 실세로 손꼽히는 델라코트 장관(조디 포스터 분)은 대통령인 파텔(페런 테이어 분)을 밀어내려는 음모를 모의합니다. 그러기 위해 맥스가 다녔던 로봇제작 회사의 CEO인 칼라일(윌리엄 피츠너 분)을 포섭합니다. 거기에 델라코트의 심복 크루거(샬토 코플리 분)도 지구에 심어놓는 것도 잊지 않지요.
맥스는 엘리시움으로 들어가기 위해 불법 이민자 셔틀을 전문적으로 하는 브로커 스파이더(와그너 모라 분)에게 요청을 하게 되는데 스파이더는 그 조건으로 칼라일을 납치해 뇌속의 자료를 빼내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일도 웬지 쉽지만은 않습니다.
과연 맥스와 프레이는 꿈에 그리던 엘리시움으로 갈 수 있을까요?
줄거리로 보면 <엘리시움>은 전작인 <디스트릭트 9>과 전혀 다른 작품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배경이나 상황등을 보면 <디스트릭트 9>의 판박이라는 것을 느끼게 만들죠.
가령 배경을 쓰레기더미가 가득한 도시로 잡은 것도 비슷한 부분인데 그러나 여기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디스트릭트 9>은 감독인 닐 블룸캠프가 살던 남아공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 반면 <엘리시움>은 미래의 LA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촬영장소는 맥시코의 쓰레기장에서 촬영을 했다는 것이 다른 점이죠. 하지만 이 부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왜 닐 블룸캠프는 지저분한 장소를 고집하는가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남아공의 경우라면 아직 빈민층이 많은 부분에서 생각한다면 당연한 부분이지만 굳이 지저분한 매립지를 찾아서 촬영하고 그곳을 LA라고 지정을 해야하는가라는 점이죠. 이는 쉽게 비유하자면 마치 곽경택 감독이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끊임없이 만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엘리시움>은 이 점부터 <디스트릭트 9>의 판박이 혹은 날로 만든 영화라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한 부분입니다.
더구나 미래라는 지점에서 벌이는 액션이라는 점에서 장르부분에서도 전작과 동일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렇게 좋은 배우들을 저렇게 활용을 못하냐의 문제도 이 영화의 단점으로 지적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본' 시리즈의 멧 데이먼이나 정말 연기 잘하는 명배우인 조디 포스터를 이렇게까지 이용하는가라는 문제점도 있다는 것이죠.
한간에서는 델라코트와 크루거의 대립장면도 부각되고 맥스와도 자주 부딪쳤다면 아마도 재미있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의료기기의 치료 원리가 너무 단순하고 허접하다라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 부분은 좀 다른 생각인데요, 미래일수록 치료제나 치료기기의 방식이 더욱 단순해 지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라고 봅니다. 물론 모든 질병을 침대같은 기구에 누워서 치료하는 것인가라는 부분에는 조금은 억지라는 부분도 있지요.
이런 비슷한 상황은 <더 울버린>에서 야시다 회장이 눕던 의료용 기구나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 금새 치료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엘리시움>은 마치 이 두가지 상황을 합친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위에 이야기한 부분은 단점인 부분이지만 한편으로는 장점일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배우면에 있어서도 각 나라의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등장한 점도 인상적이며 닐 블룸캠프 감독의 폐르소나인 샬토 코플리를 재기용한 것도 이 영화에서는 장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샬토 코플리의 경우에 이 작품에서는 악당으로 등장하는데 그동안 허술했던 악당들에 비해 상당히 잔인하고 비열한 악당으로 등장하여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하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최근 개봉한 <설국열차>와 더불어 닐 블룸캠프 감독의 전작인 <디스트릭트 9>, 그리고 이 작품 <엘리시움>을 모두 포함해 최근 작품들의 경향이 덜 가진자들의 분노와 혁명이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자유와 혁명에 대한 갈망은 휴 잭맨 주연의 <레미제라블>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위의 언급한 영화들에서도 가지지 못한자들은 가진자들을 동경의 대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노하고 분개하며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설국열차>나 <디스트릭트 9>이 암울하지만 희망적인 열린결말을 보여준다면 <엘리시움>에서 보여준 혁명은 그야말로 해피엔딩의 모습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평등해지고 '엘리시움'이라는 유토피아에서 살아가는 것이 정말로 행복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마치 아무런 걱정이 없는 스머프 마을의 미래처럼 보이지만 많은이들이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가 주장하는 사회주의의 출발처럼 보이는데 그것 역시 그리 행복해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적당히 결합된 모델을 찾는 것이 진정한 유토피아가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엘리시움>은 오락적인 재미로 보면 평이한 수준입니다. 결코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죠.
하지만 메시지를 쥐어짜면선 생각해 보기에는 이 영화는 너무 가볍지 않나 싶습니다. 위에 제가 이야기한 메시지라는 것도 흔히 평론가들이 떠드는 부분인데 과연 이런 부분까지 영화를 본 사람들이 생각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죠.
아울러 닐 블룸캠프 감독은 초심으로 돌아가 헝그리하지만 관객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번째 영화도 또 쓰레기 더미에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면 정말 창의력 없는 감독으로 비판받기 쉬울 것입니다.
가난한 빈민층을 보여주기 위해 남아공이나 쓰레기장을 더 이상 찍지 않아도 된다는 얘깁니다.
또한 자신의 폐르소나를 소중히 여기듯 다른 배우들도 균등하게 잘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했으면 하는 생각도 갖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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