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잡설들/오감만족... 이 영화 봤수?

[바람이 분다]지브리의 도발, 역사 앞에 일본은 자유로울 수 있는가?

송씨네 2013. 9. 7. 00:36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지요.

판타지가 있으며 아름다운 동화가 있지요. 모험과 짜릿한 로맨스가 있는 것이 지브리 애니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그런데 최근 지브리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시나요?

이런 느낌이 드는 가운데 최근 지브리의 수장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선언을 했습니다.

도대체 이 애니메이션이 뭐길래 이런 이야기까지 나온 것일까요?

한 평범한 소년이 전투기 설계가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다룬 작품...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風立ちぬ / The Wind Rises)입니다.

 

 

 

 

소년은 꿈을 꿉니다. 자신이 만든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입니다.

그리고 그가 존경했던 이탈리아 비행기 제작가인 카프로니 백작(노무라 만사이 분/목소리)도 만납니다.

하지만 저멀리서 날아오는 전투기와 괴물같은 모습의 미사일이 총공격을 하는 악몽에서 겨우 깨어납니다.

비행기를 만들 꿈에 젖어 있는 이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청년 지로(안노 히데아키 분/목소리) 공부를 하러 유학길에 오릅니다.

그러던 와중 지진으로 마을이 쑥대밭이 되고 지로는 한 소녀와 그들의 일행을 구출합니다.

다시 몇 년이 흘렀고 지로는 동료 혼조(니시지마 히테요시 분/목소리)의 도움으로 미츠비시 내연기제조 주식회사에 입사합니다.

깐깐해보이는 상관 구로카와(니시무라 미사히코 분/목소리)를 비롯해 설계과장 핫토리(구나무라 준 분/목소리) 등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소망은 빠르고 높고, 멀리, 길게 날수 있는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지만 그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배우기 위해 독일로 방문하지만 경계와 텃새는 그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지요.

휴식을 위해 휴가를 나온 지로는 바람에 날아오는 파라솔을 막아내고 거기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오래전 지로가 위험에서 구해낸 나오코(타키모토 미오리 분/목소리)였습니다.

운명적인 재회도 잠시... 그녀는 결핵으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상황이며 그런 상황에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과연 운명은 그들에게 장애물이 될 수 있을까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폴 발레리(시인, 1871~1945)-

 

작품을 보고나서 이런 저런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가 봐왔던 지브리 작품은 도대체 뭐였던 것인가? 등의 의문들 말입니다.

확실히 말하면 최근에 봤던 지브리 애니와는 분명 다르다는 것이죠.

몇가지가 일단 없는데요. 바로 그것들을 살펴보자면 이렇습니다.

 

우선 판타지가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지브리=판타지'의 느낌이 강했는데요.

전작들을 보더라도 환상적인 공간이나 현실 세계에서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지브리 애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감독으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지브리 작품으로 공개 되었던 <코쿠리코 언덕에서>(2011)을 보더라도 지브리의 애니에서 볼 수 있는 판타지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 지브리에서 빠지지 않는 또 하나의 특징인 로맨스는 이 작품에서는 여전히 살아있지요.

지브리 작품에서는 로맨스와 판타지 두개가 모두 살아있거나 둘 줄 하나가 죽더라더 나머지 하나는 강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왔었죠.

 

두번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왕가위가 <일대종사>를 통해 인물에 대한 영화를 처음으로 보여주었듯이 지브리에서 처음으로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이야기한 점은 이 작품이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이 작품의 실존 인물인 호시코시 지로(1903~1982)은 미츠비시 내연기제조 주식회사(지금의 미츠비시 중공업)에 입사해 비행기(특히 전투기) 개발에 참여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의 전투기 중의 하나인 제로센 전투기를 만들었지요.

만약 호시코시 지로가 그냥 비행기만 만들었다면 이 작품은 아름다운 동화같은 이야기로 그려졌을테지만 그렇게 보일 수 없는 상황이죠.

 

세번째는 어른들을 겨냥한 애니메이션이라는 느낌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유난히 이 작품은 키스 장면이나 지로와 나오코가 누워있는 장면이 많습니다. 기존의 지브리 애니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지브리 애니의 대부분 전 연령층이 볼 수 있는 상당히 안전한 등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게 제작이 되어왔습니다.

하지만 베드씬과 키스씬이 많아졌다는 점은 단순히 이 작품이 아이들만을 겨냥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전쟁의 참혹한 모습이라던과 상황들, 실존인물에 대한 묘사라는 점에서는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는 것이죠.

아이들만이 이 영화를 보러가기에는 좀 무리라는 것이죠.

 

 

 

이 작품은 이외에도 특이한 특징이 있는데요.

우선 독일어가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죠. 물론 독일인을 표현하기 위해 당연히 등장하는 부분이고 중간 중간 일본어와 섞여서 등장합니다.

상당히 인상적인 인물이 있는데 호텔에서 채식을 하면서 지로에게 말을 걸던 사내입니다. 처음에는 지브리 작품에 가끔 풍경을 스케치 하기위해 등장하는 그야말로 지나가는 사람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독일인 의사인 카스트로프(스티브 앨퍼트 분/목소리)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 인물은 지로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충고도 하게 됩니다. 일본과 독일은 망할 것이라는 독설도 서슴없이 하지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점은 진기명기에 가까운 음향효과입니다.

괴물처럼 울어대는 지진 소리라던가 비행기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 등등을 입으로 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근데 이 작품은 이런 부분에 있어서도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사용했다는 것이죠.

지브리의 오랜 전통이자 똥고집 중의 하나가 3D는 절대 없다는 것인데요, 이 부분이 음향효과에서도 등장하니 이건 아주 듣는 재미까지 준다는 것입니다.

일본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1997)나 우리나라 영화 <라듸오 데이즈>(2007)에서 등장한 진기한 음향효과를 실제로 들어볼 기회라는 것이죠.

아울러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를 지로 역에 기용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수'라고 보여집니다. 

 

자,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이슈가 되었던 전쟁을 미화한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죠.

이 작품에 대해 일부에서는 수입사가 제로센의 이야기는 빼버리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에 초점을 맞추어 홍보했다는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이 작품을 수입한 대원미디어는 일본 애니메이션 수입에 있어서는 독보적이죠. 아울러 비판도 많이 받는 곳이죠. )

더구나 호시코시 지로가 하늘을 나는 꿈을 가지고 비행기를 만들었다기 보다는 전쟁을 위해, 해군의 의뢰를 받아 만든 물건이라는 것이죠.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가 전쟁에 대해 거부반응 의견을 내놓았지만 그것이 잘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이 작품은 한 인간을 멋지게 포장한 것 자체가 실수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걱정을 미야자키 하야오도 했던 것 때문인지 몰라도 이런 대사도 나오죠.

"무기 장사꾼이 아닌 좋은 비행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 뿐이다"

핑계라면 핑계고 미야자키 하야오도 빠져 나올 구멍을 나름 만들고 싶었던게 아닌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웬지 그 구멍은 너무 컸다는 것이죠.

또한 이 작품에서 나오코와의 로맨스는 실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호리 타츠오의 원작 소설의 일부분을 차용한 것이죠.

그렇다보니 한 남자가 일과 사랑을 모두 놓치지 않은 멋진 남자로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적어도 일본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는 상남자나 쾌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한국시간 9월 6일 은퇴선언을 하였습니다.

일본 정신대 문제와 일본의 현 정치 문제에 대해 비판을 내놓았지만 <바람이 분다>의 내용을 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을 수 밖에 없지요. 그가 애매하지 않는 확실한 결론을 내렸더라면 아마 그에 대한 비판도 없었을텐데 우익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지, 좌익의 입장을 대변하는지 알 수 없는 결론은 미야자키 하야오 답지 않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 이후 과연 지브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솔직히 이번 작품은 태어나서는 안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브리가 거의 처음 시도한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무리수였고요.

지브리가 디즈니-픽사나 드림웍스처럼 모든 아이들에 꿈과 희망을 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던 꿈과 희망을 주고 환상의 나라로 안내할 것이라는 믿음은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그들이 초심으로 원상복귀한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