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고 이 아이는 밥을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방안에 가득한 초코파이
박스...
'동물의 왕국'을 애청하며 특히 얼룩말 편은 줄줄 성우의 나레이션까지 외우고
다닌다.
그러던 이 아이는 이제 청년이 되었다.
청년이 된 초원은 말을 하는 수준은 아직도 그 5살 수준 그대로이다. 어머니는 그를 강하기 키우기 위해
마라톤 대회에 출전시킨다.
그리고 나서 얼마후 정욱을 만나게 된다. 왕년의 마라토너였지만 그는 음주운전 적발 후 장애우 복지 센터에서
사회 봉사 명령을 받고 있다.
초원의 어머니는 정욱에게 초원의 코치가 되어달라고 하지만 정욱은 콧방귀만 뀔 뿐 반응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나오면 처들어간다'라는 심정으로 두 모자는 정욱의 집으로 오고 정욱은 그들의 코치가
되어준다.
하지만 초원의 동생은 삐뚤어질대로 삐뚤어지고 초원의 아버지(안내상 씨)는 잦은 출장에 얼굴보기도 힘들다.
백만불짜리 다리를 가지고 있는 초원에게 앞으로 어떤 시련과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
조승우...
처음 그에 대한 얘길 들었을 때 별로 매력이 없어보이는 배우인 것
같았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에 나와 이도령으로 나온 후 그렇게 눈에 띄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없었다.
'H'도 그랬고 '하류인생', '후아유'도 그랬다.
하지만 그가 나오는 뮤지컬을 본 사람들은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에 찬사를 보낸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
양면성의 인간역활을 보여준 조승우가 이번에는 자폐증에 걸린 장애우에 도전한다. 거기에 보통 장애우가 아닌 그 어렵고 험난한 42.195라는
숫자가 걸려있는 마라톤에 말이다.
김미숙...
그녀는 참 편안한 연기자이다.
라디오에서 깔끔하고 안정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차분해진다.
드라마에서도 지고지순한 여인의 역활만 했던 그녀이지만 이상하게 영화에서는 그녀를 볼 수가 없었다. 아니,
영화를 하지 않는 배우들 중 하나였다.
그러던 그녀가 영화를 한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실제 춘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여 장애우로써는 가장 좋은 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배형진 씨의 일화를 영화로
재구성한 작품이 바로 '말아톤'이다.
또한 재미있는 점이라면 영화에서는 정욱(이기영 씨)가 초원의 코치였지만 실제 영화를 위해 배형진 씨의
코치였던 박영철 씨가 조승우 씨의 진짜 마라톤 코치로 나선 것이다. 이 작품은 이미 KBS 인간극장으로 소개되었으며 책으로도 발간되어 화제를
모았다.
영화의 말미에는 배형진 씨의 기록에 대해 자막으로 자세히 표기하였다. 그는 이후 역시 남들도 하기 힘든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마라톤의 42.195를 서브쓰리라고 말한다. 이는 이 거리를 3시간안에 주파해야 하는 것인데
일반인들도 해내개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장애란 단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러나 쉽지 않은 도전이었음은
분명하다.
정윤철 감독은 단편작인 '기념촬영'을 통해 성수대교 붕괴후의 가족들과 친구들의 아품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기대되는 유망주 감독으로 손꼽혔다. 이번 그의 장편 데뷔작 '말아톤'은 관객들과 영화전문가 모두 만족시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들어 보기
드문 별 넷 반짜리 영화가 등장한 것이다.
물론 이 영화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실제 대규모의 액스트라나 실제 마라토너들이 참가한 춘천 마라톤 대회의
경우 촬영의 애로사항이 많았고 맑은 하늘에 등장한 비가 오는 장면에 있어서도 좀 억지가 있어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초원의 입에서 등장하는 CF
카피들은 대부분 PPL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이 PPL이 나는 얄밉지가 않다. 오히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의 억지로 들어내는 PPL보다도
자연스럽다. 그리고 '공동경비 구역 JSA'나 '집으로...'를 통해 완벽한(?) PPL로 사랑받은 초코파이가 이번에도 큰 역활을 하였다.
이것이 초원을 달리는데 또 하나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한가지 덧붙이면 실제 오리온 초코파이는 이 영화의 공식 PPL이 아니다. 다만 영화의 성공으로 인해 이
소품은 정말 PPL이 되어버렸다.)
많은 이들이 인상적인 장면으로 생각한 것은 지하철에서 치한으로 몰린 초원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얼룩무늬
미니스커트 잘못 입어 호되게 당한 이 여자의 남자친구에게 무진장 맞았던 초원은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외친다.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답답하지만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초원의 마음을 잘 나타낸
장면이다.
또한 춘천 마라톤 대회 현장에서 초원이 달리는 장면에 중간 중간에 등장한 판타지적 장면들은 웃음과 더불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수영장을 돌아, 대형 할인매장을 거쳐, 야구장을 지나 밀림의 야생 얼룩말과 함께 초원이 같이 뛰는 장면은 '오아시스'에서
종두와 공주가 꽉막힌 청계천 도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춤을 추는 것... 그것도 인도의 코끼리들과 여인들과 아이들의 축복속에 춤을 추는 장면과도
흡사하다. 감독의 의도는 틀리지 않았다면 아마 내 생각과 같지 않을까 싶다.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초원의 모습을 판타지적으로 표현한 것...
그게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흐뭇하게 미소지었던...
조승우의 미소가 아름다웠던 영화 '말아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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